책/예술

제임스 E. 영「기억/기념비」,『꼭 읽어야 할 예술 비평용어 31선』

하다다 2019. 7. 22. 20:48

pp.281~297.

 

기억과 기념비들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는가? S.기디온은 “모든 시대는 기념비들의 형태로 상징을 창조하려는 욕구를 가진다. 기념비란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기원한 용어로, 후대에 전해지기 위한 것이다.”라고 기술했다. 나는 오늘날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기념비가 취하는 형식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억과 기념비 사이의 연관성이 어떠한 목적으로 매혹적인 안도에 투신하는지 말이다. 기억과 기념비에 대한 이 숙고는 우리의 비판적 접근이 20세기를 통해 전개되어온 과정과 재구성한 방식들을 탐구한다. 나는 전통적 기념비 안에서 발견된 바와 같이 과거의 통합된 비전을 위한 요구가 절대 한 가지에 국한될 수 없다는 근대의 확신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고찰할 것이다.

기념비는 근대기에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기념비는 사회 역사적 문맥과 미적 문맥 모두 반영한다. 20세기 끝자락에서 기념비의 위상은 양면적이며 근본적인 긴장으로 가득하다. 기념비의 전통적인 형식과 기능들이 도전받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기념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있다. 20세기 말의 기념비는 그들의 탄생에 필요한 전제 자체에 저항하고 있다. 그 결과 기념비는 점점 문화적 갈등의 장소가 되었다.

루이스 멈포드는 기념비성에 관한 문제가 기념비 자체보다는 새로운 우리 시대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세르, 레제, 기디온은 1943년에 쓴 「기념비성에 관한 아홉 가지 문제들」에서 이를 보다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기념비들은 오직 통합적인 의식과 통합적인 문화가 존재하는 시기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근대에 기념비가 비난받는 동일한 이유로 후기 모던 사회에서 일어난 기념비의 부활 현상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20세기 말에 일어난 기념비와 박물관의 붐은 사회가 파편화될수록 통합할 필요가 점차 커져가는 것처럼 말이다.

모리스 할박스는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을 획득하고 상기할 수 있는 것은 대리 기억을 통해 공통의 역사를 획득하게 되는 사회화 체계의 일부로 가능하다고 한다. 따라서 공통의 기억에 대한 관념을 창조하는 것은 국가의 목표가 될 것이다. 결국 공통의 중심지를 창조하기 위해 작동하고 있다. 기념비들은 이러한 방식 속에서 귀속화된 장소를 제공해 왔고, 풍경만큼이나 당연한 진실로 존재하도록 주조됐다. 이것들이 기념비의 일루전이며 외면적 원리들이다. 그러나 현재 기념비에 대한 비평을 훼방 놓는 것 또한 외면적 귀속화이다. 그 이유는 기념비와 그것의 의미는 모두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그 순간의 정치적, 역사적, 미적 현실들을 조건으로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문화적 구체화로서의 기념비들은 역사적 이해를 가져다주는 만큼 그것을 환원시키고 거칠고 조악하게 만든다.

다른 이들은 기념비가 공동체의 기억 작용을 밀어내고 공공의 기억을 자신의 물질적 형태로 들어 앉힘으로써 완전히 대체한다고 주장했다. 피에르 노라는 ”기억이 내부로부터 적게 경험될수록 그것은 외부의 비계와 외적 기호를 통해 존재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기념비적 형식을 일단 기억에 부여하고 나면 우리는 어느 정도 기억에 대한 의무를 벗어 버려야만 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념비는 존재론적 수준에서 도전받는 외에도 20세기 회의주의를 자극했다. 예술가들과 몇몇 정부들은 기념비가 낡아빠진 가치를 형식적으로 재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혐오했다. 그러나 미술가들에게 있어서 그와 같은 기념비들은 현실에 도전하기 위한 전후 미술의 존재에 대한 새로운 근거마저도 저버리는 일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퇴폐미술로 낙인찍힌 추상 미술에 대한 나치의 혐오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사이에서 전통적인 구상적 기념비는 전체주의 사회를 통해 새로운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구상 조각이 사람들과의 유사성을 통해 관람자들을 참여시킴으로써 관람자와 기념비 사이에서 감정적 연결 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대의 많은 미술가와 건축가들은 추상적인 형태를 더욱 적합한 표현 형식으로 인식한다. 예를 들어 1981년 마야린이 제작한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비는 어떤 의미에서 총체적으로 구상화할 수 없는 베트남전과 그 참전 용사들에 대한 미국의 명백한 양가적 태도를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전통적인 구상적 기념비의 대중 미술로서의 평판은 20세기의 가장 악명높은 전체주의의 통치와 결탁하는 가운데 점점 나빠졌다. 오늘날에도 독일의 미술가들은 여전히 그곳의 기념비와 독일의 파시즘이라는 과거를 분리하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전체주의의 통치가 기념비와 같은 전체주의적 미술보다 더 찬양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역으로 기념비의 몰락을 공표하는 것만큼 전체주의 통치의 몰락을 분명하게 공표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파시즘에 반대하는 기념비란 기념비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기념비여야만 할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독일 미술가들은 공공 기념 미술의 전통적인 형식과 근거들을 경멸적으로 거부했다. 그들은 우리가 기념비로 기억을 대신하게 되는 만큼 더 잘 잊게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을 두려워 했다.

요헨게르츠와 에스터 샬레드-게르츠는 하르부르크-함부르크에 사실상 나중에 사라지도록 착상하여 설계된 <평화를 위하고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기념비>를 세웠다. 대담할 정도로 단순한 게르츠 부부의 역기념비는 모든 중요한 기념비의 전통을 조롱하는 듯했다. 이 작품은 시간과 기억, 현대사가 모든 기념할 만한 장소에서 교차하는 방식에 대한 ‘역지시’로 기능했다. 호르스트 호하이젤은 기념비 경연에 대해 간단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또 다른 조형물을 구축하여 한 민족의 절멸을 기리는 대신 파괴를 통해 파괴를 기록하고자 했다. 사실 오늘날 독일에서 어떠한 상징물도 기념비를 없애는 것만큼 기억에 대한 논쟁적이고 자기포기적인 동기를 잘 표상할 수는 없다.

기념비들은 한 국가의 공식적인 역사가 전해지고 기억되는 매듭 역할을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국민의 적극적인 협력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어느 국가의 기념비든지 간에 실제로 이와 유사하게 탈맥락화될 수 있고, 그 자체의 중요성이나 자가 발생적인 확실성 그리고 끝없는 가식이 박탈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기념비들은 오직 대중의 동의 아래 살아남는다. 그러나 역기념비가 자신의 형태를 부정함으로써 기억까지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은 전통적으로 기념비에 수반되어 온 영속성에 대한 일루전을 부정할 뿐이다. 그 자체의 존재 근거에 저항함으로써 역기념비는 역설적으로 기념비라는 바로 그 개념을 소생시키고 있다.

일부 미술사학자들은 미술에 대한 인류학적, 사회학적, 심리학적 접근을 전통적으로 배제해 온 반면, 어떤 학자들은 예술의 사회학이라는 보다 폭넓은 문제의식을 자신의 연구에 포함시켰다. 후자의 경우에 공공의 기념비들은 한 미술 작품의 사회적 생명, 사회의 정신에 있어서의 그것의 생명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마리안 되즈마가 주장한 바와 같이 기념비의 단순한 양식이나 디자인 경향보다는 이의 수행이 훨씬 중요하다. ”공공 기념비는 미술작품으로서의 특성과는 별도의 책임을 가진다. 그것은 공공을 위해 창조된 예술작품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이 기념비로부터 얻는 실제적인 결과까지 말하는 것이다. 결국에 기억은 지속되며,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한다. 요컨대 기억이란 기념비를 살아 있게 하는 활동 속에, 우리가 기념화된 과거의 빛 속에 취하는 구체적인 행동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 제임스 영은 다양성의 민주사회에 기념비가 적합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양식으로 만들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 나는 기념비를 넘어 영화라는 매체가 다루는 '기억'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대중의 '기억'을 담은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무거운 '책임'이 따르는 것 같다. 

지난 4월 3일 영화 '생일'이 개봉했다. 이 영화가 화제가 된 것은 '세월호'를 다뤘다는 점이다.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의 이름으로, 진도 인근 해상에서 침몰하며 승객 304명이 사망·실종된 대형 참사다. 침몰 원인으로는 화물 과적,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이라고 발표되었지만 여전히 논란거리가 다분하다. 그러므로 5년이 지난 현재에도 예민하고, 아픈 키워드다. 이런 '세월호'를 다룬 영화라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개봉 이후 관람객들은 조심스럽게, 담담하게, 그러나 진정성 있게 영화를 만들었다며 호평 했다. 이렇게 한껏 아프고 예민했던 '세월호'가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유가족들에 대한 공감이라는 주제로 다가왔다. 물론 영화 <생일> 뿐 아니라 <변호인>, <아이 캔 스피크> 등 수 많은 사건들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기억되고 있다.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관람객'의 입장에서 2시간 가량 수동적으로 관람할 수 밖에 없기에 어쩌면 기념비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비평 가능한 요소를 품으며 풍성하게 기억할 수 있는 매체로써 기념영화를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앞서 말한 <생일>이란 영화가 '세월호'의 소재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음으로써 보다 나은 기념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