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190626 서울대학교 미술관 <재난 Disaster>

하다다 2019. 7. 22. 20:59

좋은 전시를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이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잘 가지 못했던 미술관.. 오늘 도서관을 향하던 발걸음을 미술관으로 기꺼이 돌렸다. 그래서 얻을 수 있었던 좋은 전시와 작품들.. 2019년 7월 7일 일요일. 성공적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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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유정 소란스러운 상황을 조용하게 그려낸 듯 하다. 조용하다못해 입을 굳게 닫게 된다. 제목까지 보면 더욱 그러하다. '떨어지는 사람, 땅, 추락' 너무 별거 없기에 별거 있는 작품들. 어떤 서사도 허락하지 않는다. 재난이란 결국 그런거니까..

자신의 기획에 부합한 작가를 찾아내 큰 설명없이도 전시 의도를 나타낼 수 있다니. 나한테 전시기획자는 천지창조자같다.

 

오빠가 먼저 보더니, 나한테 보지말라고 하던 작품. #박경진 2014년작, 반경 0Km 시리즈. 아프고 잔인한 이미지,  

하지만 오늘 깨달았다. 이 사건들은 내게 그저 이미지 뿐이었다. 나는 전혀 이해한 적 없었다. 이해하지 못하므로 아플수도 없었다. 이유도 모른 체 저 돼지들처럼 구덩이에 빠져 죽어본 적도 없다. 그저 뉴스에서나 접하며 10초도 안되는 시간을 안타까워하다 채널을 돌렸겠지.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이 잔인무도한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옮긴 작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무슨 생각을 하며 그렸을까. 그럼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작품을 보고 있나. 

 

마지막으로 마주친 #이보람의 #붉은그림들 

[붉은 그림 작업 과정] 
2. 희생자들의 키를 근거로, 소아발육표준치 도표를 참고하여 나이와 몸무게를 추정한다. 붉은 그림들은 그려진 희생자들 중 6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3. 피는 소아의 경우 체중의 8~9%이다. 이를 근거로 혈액량을 추산한다. 
4. 추산한 혈액량만큼의 물감을 빨간색 피그먼트, 홍화씨유, 테레핀유와 기타 보조제를 섞어 만든다. 
5. 물감에 이를 다 머금을 수 있을 정도의 천을 재단하여 담근다. 
6. 염색된 천을 말린다. 
7. 나무 와구에 천을 짠다. 
8. 그림 옆면에 사건이 일어났던 날짜와 장소를 기록한다. 
그 아래의 날짜는 이 그림이 완성된 날짜이다. 

 


붉은 캔버스를 호기심으로 바라보다. 문득 놀라고 말았다. 물감인걸 뻔히 아는데도, 누군가의 혈액만큼의 양이라니 께름칙하다. 그럼에도 전시장에 나가기 위해서 이 캔버스들 사이를 걸어가야만 했다. 혼자여도 무서운데, 오빠까지 무서워하니 더 무서웠다. 

그때 느꼈다. 아 이 공포가 '재난'이구나. 나는 늘 희생자들의 사이를 걷고 있었는데,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난의 이미지들을 넘어 공포까지 체험하다니. 나는 좀 변했을까. 지난 금요일에 쓴 글에서도 말했듯이, 변하는 것만큼 오래걸리는 건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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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서한겸 개인전: 영원한 소란 이건 차마 못보겠더라. 재난 전에 생긴 공포심으로 더 이상 관람하기 힘들었다.